[한겨레21] 골프장 때문에? ‘우영우 팽나무’ 닮은 용뿔나무(산황산 느티나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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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2-09-11 조회수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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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 때문에? ‘우영우 팽나무’ 닮은 용뿔나무





2021년 보호수 1만3859그루, 천연기념물 나무는 176그루





제1427호





등록 : 2022-08-25 00:03 수정 : 2022-08-25 08:37








2022년 8월9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산황산에 690년 전 무학대사가 심었다는 ‘용뿔’ 느티나무가 서 있다. 둘레가 11m에 달하고 남북으로 30m에 걸쳐 가지가 뻗어 있는 독특한 수형의 거목이다. 김진수 선임기자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500살 된 팽나무 한 그루가 도로 개발로 절단 날 위기에 처한 소덕동을 구한다. ‘우영우 팽나무’와 같이 나이 많고 큰 노거수(老巨樹)가 전국에 많다. 2021년 말 기준 산림보호법에 따라 보호되는 ‘보호수’는 1만3859그루,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관리받는 ‘천연기념물’은 176그루다. ‘우영우 팽나무’의 실제 모델인 경남 창원 동부마을 팽나무도 2015년 7월 보호수로 지정됐고, 현재 천연기념물 지정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2022년 8월24일 문화재청 심의 예정).





수백 년 전부터 함께 살았고, 이겨낸 세월만큼 크게 굵어져 영험한 나무(신목·神木), 소원 비는 나무(당산목·堂山木) 등으로 받들려온 이 ‘나무 어르신’들은 현실에서도 좋은 대접을 받으며 잘 살고 있을까.





넘어온 굵은 가지 잘라도 제재 없어





2022년 8월5일 경의중앙선 곡산역에서 북동쪽으로 걸어서 20분 거리, 경기도 고양시 산황산에 둘러싸인 경기도 보호수 1호 ‘용뿔나무’(느티나무, 1982년 10월 보호수 지정)를 찾았다.





줄기를 곧게 위로 치켜세운 다음 가지와 잎을 옆으로 내는 여느 느티나무와 달리, 용뿔나무는 옆으로 퍼져 성인 가슴 높이 정도의 둘레가 11m에 달했다. 키는 11m로 690년 된 나무치고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남북으로 뻗은 굵은 줄기에서 30여m에 걸쳐 가지와 잎이 넓게 뻗어 있었다. 가지와 잎 아래 만들어진 거대한 타원형 수관(樹冠)이 주변을 압도했다. 나무의 가지와 잎이 달린 부분은 머리에 쓰는 ‘갓’을 닮았다고 해서 ‘수관’ 혹은 ‘나무갓’이라고 한다. ‘용의 뿔’로 부르는 이 나무는 이름답게 높이 솟았다가 거의 바닥에 닿을 듯 아래로 굽이치는 가지 하나하나 그냥 뻗은 게 없었다.





용뿔나무와 1m가량 떨어진 곳에 불에 타다 남은 듯한 굵은 가지가 하나 보였다. “2019년 11월 강풍에 400년 정도 된 굵은 나뭇가지가 하나 부러져 고양시가 보호수 옆에 뒀는데 그걸 누군가 불태워버렸네요.” 동행한 조정 고양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름만 보호수지 사실상 방치되고 있어요. 강풍에 위로 치솟은 용뿔의 끝에 해당하는 100살가량 된 나뭇가지도 부러졌어요. 고양시는 강풍 탓만 하는데, 저희 생각은 달라요.” 20여 년 전 용뿔나무 바로 옆에 포장된 찻길이 뚫리고 2011년 산황산에 골프장이 지어지면서 나무의 잎이 줄어드는 등 생육 상태가 서서히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 고양시 시민사회단체들의 판단이다. 용뿔나무의 수관 아래, 즉 뿌리 위 토양의 절반가량은 시멘트로 포장됐다.





산림보호법(제13조 3항)은 “누구든지 보호수를 훼손해선 안 된다” “보호수의 수관폭 내 개발 행위를 제한할 수 있다” 등 보호수를 위한 ‘행위 제한’을 규정하지만 이 규정이 엄격하게 적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심지어 한 달 전 용뿔나무가 있는 땅의 소유주는 ‘가지가 늘어져 자동차 피해가 우려된다’며 약 100년 된 굵은 가지를 잘랐지만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조정 공동의장은 “2016년, 2019년, 2021년 세 차례 걸쳐 고양시 담당자에게 용뿔나무의 천연기념물 신청을 건의했지만 받아주지 않더라고요. 현재 9홀인 골프장을 18홀로 넓히는 개발계획이 예정됐는데, 그렇게 되면 용뿔나무 30m 앞까지 골프장이 들어섭니다. 골프장은 지하수 사용이 많아서 용뿔나무와 물을 놓고 경쟁하게 됩니다. ‘우영우 팽나무’처럼 고양시가 개발 때문에 천연기념물 신청 건의를 무시한다고 의심하는 분들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고양시 담당자는 “가지치기한 사실을 알고 난 뒤 나무병원을 통해 잘린 부위에 방수 처리를 했다. 이런 문제가 더는 생기지 않도록, 현재 땅 매입을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천연기념물 신청 건의에 대해선 “공식적으로 건의가 들어오지 않아, 검토된 게 없다”고 밝혔다.





왜 보호수 신규 지정이 많지 않을까





윤여창 서울대 산림과학부 명예교수는 “용뿔나무는 매년 11월 마을에서 당산제를 지내는 문화자산이다. 산황산은 부족한 도심 지역의 녹지지대라는 측면에서 재평가돼야 한다. 여기에 골프장 개발을 한다는 건 생물다양성을 깎아먹고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낮출 것”이라며 “특히 용뿔나무는 모양새 등으로 볼 때 독특한 가치가 있다. 국가 문화재 내지 경기도 문화재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용뿔나무처럼 사유지에 있는 보호수는 전국에 8144그루(2021년 말 기준)다. 전국 보호수의 절반 이상(58.8%)이다. 도심 지역에 있는 보호수는 집과 도로 사이에서 둥치 부분 땅만 간신히 움켜잡다가 고사 직전 상태에 내몰리는 경우도 많다. 2000년 12월 지정된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보호수(150살)는 주택가 담장과 이면도로 사이에 딱 붙어 살다가 2018년 8월 말라 죽었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사유지 보호수는 울타리와 간판을 세우기도 쉽지 않다”며 “최근에 보호수 신규 지정이 안 되는 것도, 지정 시 땅 주인이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땅 주인이나 주변 주민들이 개발 제한 등 불이익을 우려해 보호수 지정을 반기지 않고 되레 옮겨달라고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보호수 보호를 위해 땅을 매입할 수 있도록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실제 2018년 9월 서울 신반포15차재건축 조합은 단지 내 360살 된 보호수 때문에 ‘지하 공간 사용이 어려워 사익이 침해된다’며 보호수 이전을 요구했으나 서울시가 거부했다. 조합 쪽은 대형 로펌(법무법인 태평양)을 동원해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하지만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공간 사용 제한은 이전 사유가 될 수 없다”며 서울시 손을 들어줬다.





산림청 자료를 보면 2016~2020년 관리 부실 등으로 고사한 보호수는 259그루다. 오충현 동국대 바이오환경학과 교수는 “자연환경에 대한 몰이해가 상당수 보호수가 고사 직전에 내몰린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했다. 담당 공무원들조차 나무 생육,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땅속뿌리 생육에 무지 내지 무관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보호수·천연기념물 등의 관리를 책임지는 ‘나무의사’의 전문성도 논란이다. 나무의사 제도는 2018년 6월부터 시행했는데, 지정 기관에서 150시간 교육을 이수하면 시험자격이 주어진다. 2022년 4월 기준 733명이 합격했다. 나무의사 제도의 원형인 일본의 ‘수목의’ 제도는 수목 보호·치료 업무 경험이 7년 이상인 자를 대상으로 응시자의 논문을 심사해 15일간 연수한 뒤에야 시험자격을 부여한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노거수 관리를 위해 발주해보면 나무병원은 기술자 한 명을 겨우 보유한 영세업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맨눈으로 보거나 고무망치 하나 들고 두드리면서 속이 썩었나 살펴본다. 산림청 등에서 고가 장비를 대여하거나 기술을 제공하는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0년 이후 10그루 중 1그루 고사





지자체 예산으로 연 1회 점검받는 보호수에 견줘 국가 예산을 지원받고 연 6회 점검받는 천연기념물도 죽고 나서야 사인을 아는 일이 많다. 균형 잡힌 반구형 수관으로 유명했던 ‘충북 보은 백송’도 2004년 여름 갑자기 고사했다. 조사해보니 1983년 마을 주민들이 쌓은 1m 높이의 축대가 원인이었다. 축대 아래 뿌리는 물론이고 땅속에 묻힌 나무 밑동까지 검게 썩어 있었다.





사실 많은 노거수가 원인도 제대로 모른 채 신음하고 있다. 원로 수목생리학자인 이경준 서울대 산림과학부 명예교수가 현장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2006년 낸 <한국의 천연기념물: 노거수 편>을 보면 천연기념물 144그루 가운데 생육 상태 ‘나쁨’은 25그루(17.4%), ‘매우 나쁨’도 7그루(4.9%)에 달했다. 김윤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산림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 이후 지정이 해제된 천연기념물 노거수는 62그루다. 2000년 이후에만 18그루가 고사했다. 지난 22년 동안 천연기념물 노거수 10그루 중 1그루가 고사한 셈이다.





이 가운데서도 ‘충북 보은 정이품송’은 운이 좋았다. 1982년 정이품송의 복토 문제를 처음 지적한 이경준 명예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수관이 균형 잡힌 우산 모양을 한 정이품송이 망가진 계기는 1973년 법주사에 진입하는 찻길을 포장하는 과정에서 나온 흙과 모래·자갈로 나무 둥치를 덮은 일이었다. 1988년 땅을 파보니 60㎝ 정도 복토됐는데 잔뿌리의 80%가량이 죽은 것으로 확인됐다. 밑동은 썩어서 잘록해져 있었다. 복토 제거 공사는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려 1988년부터 6년간 이뤄졌다.





키가 점점 줄어드는 1100살 은행나무





이 명예교수는 “고목은 굵은 뿌리가 (흙 밖으로) 노출된다. 자연스럽고 건강한 모습이다. 그렇게 웅장하게 뻗은 모습을 그대로 감상해야 하는데, 안쓰럽다고 흙을 덮어준다. 좋은 의도였지만 피해는 영구적이다. 흙을 걷어내도 예전처럼 살아나지 않는다. 정이품송은 남은 20%의 뿌리로 지금도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1100살 된 용문사 은행나무도 1919년 일본인이 쓴 <조선거수노수명목지>를 보면 높이가 62m라고 돼 있지만 1962년 천연기념물 지정 당시 42m였고, 2005년 측정해보니 39m로 줄어들었다. 30도 경사지에 자라던 이 나무는 옆 개울에서 양분을 빨아들이며 자랐는데, 겉흙이 씻겨 내려가자 스님들이 보호한다고 석축을 쌓으면서 치명타를 입었다”며 “천연기념물인 서울 신림동 굴참나무, 창덕궁 향나무, 제주 표선면 성읍리 느티나무 등 많은 노거수가 복토 때문에 쪼그라들고 있는데 이 심각한 걸 공무원들은 잘 모른다”고 덧붙였다.





고양=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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